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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인간은 고통스럽게 태어나지만 누구나 평안하게 죽기를, 나아가 인간답게 존엄하게 죽기를 원한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죽는 과정은 사는 것처럼 순탄치 않다. 몸의 기능이 조금씩 떨어지고, 이곳저곳 아프기 시작한다. 최악의 경우는 치매처럼 기억을 잃어간다.
미카엘 하네케 감독에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안긴 영화 '아무르'(2012)에서 80대 여주인공 안느는 반신마비에서 시작해 서서히 몸 기능을 잃어간다. 움직임을, 언어를,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생각을. 생각을 잃기 전 안느는 남편 조르주에게 말한다. "더는 계속하고 싶지 않다"고. "이 나의 신용등급조회 제 삶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소설가 폴 오스터 [AFP=연합뉴스]


지난해 영면한 미국 작가 폴 오스터는 회고록 '윈터 저널'에서 인생의 비밀인 '덧없음'과 그걸 깨닫지 못한 채 살아가는 인간의 무지를 비웃으며 손권 이렇게 썼다.
"당신은 생각한다. 이런 일이 당신에게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당신에게는 이런 일이 결코 일어날 수 없다고, 이런 일이 절대로 일어날 리 없는 유일한 사람일 거라고. 그러다가 그 일이 시작된다. 하나씩 하나씩 모든 일이 다른 사람에게 일어난 것과 똑같이 당신에게도 일어난다."


복리
한 대학병원 중환자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신간 '내가 죽는 날'(수오서재)은 오스터가 얘기한, 불행이 닥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미국 문화인류학자 애니타 해닉이 수년간 조력 사망 현장을 직접 동행해 썼다. 오리건주를 비롯해 조력 사망이 합법화된 모테나 지역의 환자, 가족, 의료진들을 만나 조력 사망의 현장을 취재해 책에 담았다. 조력 사망이란 정신이 온전한 성인 말기 환자가 의사에게 처방받은 치사 약물을 스스로 복용해 합법적으로 생을 마감하는 것을 말한다.
저자가 만난 90살 노인 켄도 조력 사망을 준비 중이었다. 그는 비교적 운이 좋은 편에 속했다. 까다로운 조력 사망 조건을 모두 2000천만원 충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사망을 도와줄 의료진을 찾았고, 정신도 말짱한 데다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존엄사와 안락사의 차이 [연합뉴스 TV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약은 썼다. 켄의 가족은 저자에게 "인생 최후의 맛이 그토록 지독할 수밖에 없느냐"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켄은 독배를 마시기 전 잠시 삶을 회상했다. 그리고 조력 사망보다 나은 선택이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
처음에는 목 협착증이 찾아와 수술했고, 이어 대장암 진단을 받아 또 수술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심장 박동기를 달았다. 아흔이 되자 울혈성 심부전, 심장 판막 누출, 공격적 전립선암이 잇달아 찾아왔다.
이제 그의 삶에 의미 있는 일들은 전혀 없었다.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건 앉아서 TV 보는 일이었다. 경마, 권투경기, 골프 대회를 시청했으나 누가 이기든 상관없었다. 계속해서 찾아오는 병마가 여생의 즐거움을 모두 빼앗아버렸기 때문이다. 자식들도 다 떠났고, 이제 유일한 즐거움은 손주들을 보는 일이었으나, 그게 더 살 이유가 되진 못했다.



연명치료 [연합뉴스 TV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나는 평생 살아남으려고 노력했어요. 항상 더 좋은 집에 더 좋은 옷을 입고 더 좋은 음식을 먹으려고, 더 좋은 자동차를 타고 더 좋은 영화를 보려고 애썼죠. 그런데 갑자기 그런 게 완전히 무의미해진 거예요…. 다들 엄청난 가치라도 있는 것처럼 목숨에 매달려요. 정말 그렇게 매달릴 만한 가치는 없는데."
조력 사망을 시행하기 전 켄이 저자에게 한 말이다. 켄은 자신이 선곡한 곡을 들으며 독배를 마셨다. 인생을 고투하며 살아가는 데 90년이 걸렸지만, 죽는 데는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스위스 캡슐형 조력사망 기기 '사르코'(Sarco) [EPA=연합뉴스]


젊은 시절 육상선수였고, 40대가 넘어서도 마라톤을 꾸준히 했던 조는 일흔 두살에 루게릭병 진단을 받았다. 신체 근육이 하나씩 마비되며 2~5년 안에 사망하는 무서운 병이다. 조에게는 해결되지 않는 고민이 있었다. 조력 사망을 하고 싶어도 갑자기 몸 상태가 악화하면 조력 사망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독배를 스스로 들 수 없을 수도 있기에 생겨난 고민이다. 법에 따르면 가족도, 의료진도 조력사 하려는 이에게 약물을 먹일 수는 없다. 저자는 "스스로 약물을 삼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조력 사망법의 기본 전제"라며 "이 전제는 루게릭병 외에도 여러 진행성 신경퇴행성 질환의 신체 증상과 충돌한다"고 설명한다.



[수오서재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저자는 이 밖에도 간호사이자 조산사였지만 은퇴 후 오리건과 워싱턴 전역을 오가며 임종을 맞은 이들을 안내하는 데리애나, 존엄사법의 적용 범위를 넓히기 위해 싸우다 존엄사 자격을 얻은 파킨슨병 활동가 브루스 등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한다. 5년간 현장을 취재한 그는 "조력 사망은 인간이 삶의 마지막을 직접 결정할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며 "자기 죽음을 예측하고 연출하는 것이 죽어가는 사람은 물론 남겨진 사람에게도 큰 힘을 줄 수 있음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결국에는 이 모든 게 끝날 테니까. 그리고 그때가 되면 어떻게 떠날지 선택권이 주어지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신소희 옮김. 3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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